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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대한다, 아카이브에 대해서도

에세이 · 2026.02


손택의 질문

1964년, 수잔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이 예술을 이해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가리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택에게 해석이란 예술을 "진짜 의미"로 번역하려는 충동이었고, 그 순간 예술은 독자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해석은 예술을 길들인다." 그는 해석 대신 형식의 감각, 즉 예술을 직접 경험하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카이브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용으로 읽는 아카이브

우리는 아카이브를 먼저 "무엇을 담고 있는가"로 읽는다. 자료의 양, 희귀성, 역사적 가치. 몇 점을 소장하고 있는가, 어떤 시대를 다루는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은 아카이브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가린다. 아카이브는 자료의 합이 아니다. 무엇을 수집하고 무엇을 배제했는가, 어떤 분류 체계로 세계를 나누었는가, 어떤 경로로 탐색하게 하는가, 무엇을 전면에 두고 무엇을 뒤로 숨겼는가. 이 모든 선택과 배열이 아카이브의 형식이다. 그리고 이 형식은 단지 내용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무엇이 내용이 될 수 있는지를 미리 규정하는 구조다. 형식은 내용을 드러내며, 내용을 형식을 만든다. 아카이브를 내용으로만 읽는 것은, 손택의 말을 빌리면, 아카이브를 해석하는 일이다. 아카이브를 길들이는 일인 것이다.

달라진 아카이브

전통적으로 아카이브는 기관의 기록을 보존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핵심 가치는 증거성, 진본성, 신뢰성이었다. 아카이브는 과거를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기반 시설이었고, 아키비스트는 그 시설의 관리자였다. 그러나 지금 아카이브의 성격은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누구나 기록을 남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지털 도구와 웹 환경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카이브는 업무 기록을 넘어 개인의 경험, 작업의 과정, 일상의 리듬, 감정의 흔적까지 포괄한다. 이 변화는 아카이브를 둘러싼 표현의 조건과 매체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카이브가 자기 세계를 구성하고 드러내는 매체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을 모으고,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순서로 배열하며, 어떤 경로로 탐색하게 할 것인가.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적 결정이 아니다. 표현의 문제다. 나는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아카이브를 통해 드러낸다. 이제, 아카이브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아카이브 비평이란

그렇다면 '아카이브 비평'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손택은 해석 대신 "형식의 에로티시즘(an erotics of art)"을 말했다. 작품의 표면, 감각적 경험, 형식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 예술을 의미로 환원하지 않고,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비평. 아카이브 비평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아카이브의 가치를 재단하거나 그 "진짜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대신 아카이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형식으로 세계를 조직하는지, 그 구조가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배제하는지를 드러내는 일. 아카이브를 해석하는 비평이 아니라, 아카이브를 스스로 보게 하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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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archives.xyz가 하려는 일도 여기에 가깝다. 아카이브를 비평하되, 아카이브를 가리지 않는 비평. 아카이브의 형식을 읽되, 그것을 의미로 환원하지 않는 태도. 아카이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내어, 독자가 직접 아카이브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실천. 손택이 말했듯, "해석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에로티시즘이다." 아카이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해석 대신, 형식의 감각이 필요하다.